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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금요일

更改는 경개인가, 갱개인가?


更改는 경개인가, 갱개인가?
양창수 서울대 법대 교수
 
민법은 1958년 2월22일에 공포되었다. 당시 시행되던 공포식령(1948년 8월30일 대통령령 제1호) 제4조, 제10조는 법률의 ‘公文’을 공포함에는 관보로써 한다고 정하고 있다. 1958년 5월22일 자의 관보에 실린 민법의 규정을 읽으면,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띄어쓰기가 전혀 없이 한 문장 모두 붙어 있다. 또 문장이 끝나는 곳에도 마침표가 찍혀 있지 않고, 문장이 둘 이상이면 그 사이를 한 칸 비웠을 뿐이다. 그리고 漢字로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한자로 쓰여져 있다. 그러므로 ‘對하여’, ‘關하여’, ‘爲하여’, ‘依하고’, ‘者’, ‘等’, ‘後’ 등은 물론 모두 한자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법의 正文은 후에 개정되지 아니한 이상 띄어 쓰지 않고 마침표가 없는 한자투성이의 문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이용하는 법전류에는 민법에 띄어쓰기도 되어 있고 마침표도 찍혀 있다. 그리고 법제처의 인터넷사이트나 법고을에 법률정보로 게시되어 있는 민법의 조항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가 보고 인용하고 있는 민법 규정은 엄밀히 말하면 그 정문과는 다른 것이다(이상에 대해서는 이미 梁彰洙, ‘民法典 制定過程에 관한 殘片’, 同, 民法硏究 제8권(2005), 21면 이하에 쓴 바 있다).
 
한편 민법이 한자투성이라고 해도 이를 이해하거나 적용하는 데 별다른 문제는 없다. 그런데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거기의 한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表見代理’이다. 이 말은 제125조, 제126조 및 제129조의 표제에 등장한다(우리 민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표제도 민법전의 일부로 하였다. 예를 들면 독일민법은 2002년에야 표제를 붙였고, 일본민법에 표제가 붙은 것도 2004년에 이르러서이다). 이것은 ‘표현대리’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분들이 말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고 ‘표견대리’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에 대하여는 梁彰洙, “표견대리냐, 표현대리냐?”, 同, 民法散考(1998), 87면 이하 참조). 그러나 요즈음도 법원의 판결은 변함없이 ‘표현대리’ 또는 ‘표현대표이사’라고 하고 있으니, 빈들의 외침에 그친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지난 2월 1일자의 판례공보를 보다가 ‘갱개’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大判 2006.12.22, 2004다37669(공보 2007상, 196)이 그것이다. 얼핏 얼마 전에도 그렇게 쓴 판결을 읽은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大判 2004.9.3, 2002다37405(공보 하, 1640)도 말미쯤에서 “위 청산합의는 원고의 각 선박소유자들에 대한 이 사건 보증계약에 따른 구채무를 소멸시키고 신채무를 발생시키기로 하는 갱개계약에 해당된다”라고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법원은 更改를 아예 갱개로 읽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다음 호의 판례공보에 실린 大判 2007.1.11, 2005다47175(공보 상, 275)은 다행히 ‘경개’라고 되어 있었다.
 
민법 교과서를 보면 모두 ‘경개’라고 한다. 내가 찾아본 우리말사전이나 법학사전에도 예외없이 ‘경개’로 나와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更’은 경 또는 갱으로 읽는데, ‘경’은 고친다는 뜻이고, ‘갱’은 다시 한다 또는 새로 한다의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更新은 갱신이고, 更改는 경개라고 해야 할 듯하다. 更改는 다시 하거나 새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미 있는 채무관계를 고친다는 것이니 말이다. 한자로 같은 뜻의 말을 중복해서 단어를 만드는 예는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變更’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법고을에서 ‘갱개’를 검색어로 판례검색을 하면 하급심을 포함하여 35개의 재판례가 뜨고, ‘경개’로 하면 45개가 나오니, 아직 법관들 사이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 견해가 팽팽하게 나뉜다고 해도 될 것이다. 한편 법령검색을 하면 경개는 민법에 나오는데, 갱개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물론 대법원판결에서 ‘갱개’라고 한다고 해서 한자읽기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맞춤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제는 ‘갱개’라고 한 판결을 보고 오늘은 ‘경개’라고 한 판결을 읽으니, 왠지 속이 편치 않다. 그렇다고 전원합의체 판결로 결판을 낼 사항도 아니고, 혹 대법원의 재판연구관들의 연구과제에는 이런 사항은 포함되지 않는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 본다. 연구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일이 머리 속을 맴돈다. 그 중에는 이런 些事도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별 이유없이 혼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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